성경에 기록이 된 예수님의 제자들이 순교한 모습들이 하나같이 예수님을 많이 닮아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열한명의 제자들이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처럼 하나같이 닮아 있을까?
우선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동안 활동을 하신 것을 살펴 보면 수많은 군중들이 항상 따라 다녔다.
수만명이 운집하여 복음을 들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병고침을 받았다.
그러는 도중에 로마에 갔을때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보며 열광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칭송까지 한다는 것을 본디오 빌라도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할 부분들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금식을 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를 하셨다고 나오는데 이기도를 하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을 자리를 이미 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본디오 빌라도 앞에 일부러 나아가신 것을 알수가 있다.
최후의 만찬을 하실때 "그릇에 손을 함께 담구는 자가 나를 팔 것이라" 고 말씀을 하셨는데 가롯유다를 지칭하는 것이였고 은연중에 "그렇게 하라"고 말씀까지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중에 한 사람인 가롯 유다가 배신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롯 유다가 왜 배신을 했을까?
이부분을 살펴보면 향유옥합을 깨뜨린 여인에게 회계담당을 하고 있는 가롯유다가 이여인에게 비싼 향유옥합을 깨드린 것에 대하여 나무라며 말을 하였는데 이때 예수님께서는 이여인의 편을 들어주며 말씀을 하셨는데 여기서 가롯유다가 그많은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민망함을 넘어 창피함 그리고 서운함이 생기고 원망하는 마음이 함께 자리를 잡았는데 이때 사탄이 그마음 한가운데를 비집고 들어와 예수님을 배신하며 팔려는 마음을 심어 준 것이다.
사탄은 사람의 간사한 마음과 취약한 곳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런 마음을 간파하여 가롯유다에게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도록 마음을 심어준 것이다.
배신을 하는 지인, 그리고 친척, 가족, 정치인들중에서도 배신하는 마음은 이런 원리와 같다.
그런데 돈에 대한 욕심과 욕망으로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이유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인데 돈을 사랑하게 만드는 이가 사탄이기 때문이다.
돈때문에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사익을 위해 사기를 치기도 하며 배신도 하며 간혹 살인도 교사하기도 하며 개인적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돈때문에 강도짓을 하는 각종 강력 범죄들이 발생한다.
인간이 짓는 죄라는 것이 자범죄가 있고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짓는 각종 수많은 죄들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 돈과 관련이 되어 있는 돈때문에 짓는 범죄가 이에 해당이 된다.
돈때문에 의리를 저버리기도 하며 지인을 배신하기도 하며 윗사람을 배신을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돈때문에 부모와 자식간에 서로가 원수가 되기도 하며 돈때문에 친척들간에도 원수가 되기도 하며 돈때문에 인륜과 도덕마저 저버리기도 한다.
사탄이 돈을 수단으로 삼아 사람을 미혹하고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돈은 일만 악의 뿌리이니"' 하시며 성도들에게 말씀으로 경계를 하라며 가르쳐주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너에게는 나를 죽일 권세도 있고 살릴수 있는 권세도 있다"
"너의 뜻대로 하라"고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날에 자신이 죽을 운명인 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는데 마지막에 하셨던 말씀이 "모든 것을 다 이루었도다" 하시고 숨을 거두시더라.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예수님꼐서는 죄가 없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죄가 없으심에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이것이 말해주고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권력은 죄가 없어도 죄를 만들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권력만이 가진 속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본디오 빌라도를 찾아가면 자신이 죽으실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대목인 것이다.
병을 고치며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였음에도 권력에 대항하거나 가까이 하거나 탐하면 죄가 없어도 죽을 수가 있음을 알수가 있는 대목인 것이다.
권력이 가진 속성이란 이런 것이다.
죄가 없는 신의 아들인 예수님도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면 자신이 죽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권력을 가지고 놀려고 하고 있다.
권력의 속성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권력을 가지고 자신이 우위에 설려고 하지 못할 것인데 한국의 정치 수준이 너무 낮다보니 정치인들이 목사들에게 휘둘리기도 하고 끌려다니고 있다.
목사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머릿수로 하나의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권력의 속성과 정치의 속성을 정확히 깨닫고 알고 있다면 권력과 정치에 관여하지 못할 것인데 오늘날 목사들은 자신을 섬기는 성도들을 권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많은 것을 성도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가롯유다가 배신을 한 이유는 설명이 되었을테고 예수님을 통하여 권력의 속성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순교를 했을까?
그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에서도 신분계급이 있듯이 천국에도 신분계급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도지사, 시장, 그리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이지 그외엔 공무원 신분이 되면 정년 퇴직할 때까지 신분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1급부터 10급까지 대한민국 공무원의 신분계급이 있고 계급이 없는 서민들이 있는 것처럼 천국에도 1반열에서 10반열에 이르는 계급이 있고 서민들처럼 반열의 계급이 없는 무반열의 계급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1반열에 있지 못한다면 천국에 입성하는 수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았을때 어떻게 생각을 하겠는가?
만약을 가정하면,
베드로가 3반열에 있고 바돌로매가 5반열에 있다면 성도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3반열과 5반열이 뭐냐고 수근거리고 서로 쳐다보며 민망해 하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순교를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예수님께서는 주신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이렇게 죽은 제자들의 순교 장면을 보여주며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었던 제자들이 죽은 모습을 보라고!
"니들이 믿는 예수의 제자들이라는 이들이 어떤 꼬라지로 죽었는지 모습을 보라고"
솔직히 예수님의 모든 제자의 순교 모습을 헤아려 볼수는 없었다.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알고 있었으나 제자 모두가 십자가에서 죽은 사실을 인지못했던 것은 성경 전체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제자들 |
제자들의 순교 모습들 |
세배대 아들 야고보 | 헤롯 왕에게 머리가 잘려 죽었다 |
베드로 |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군에 잡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었다. |
마태 | 에티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말뚝에 의해 땅에 박히고 머리가 잘려 죽었다. |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졌으나 기적적으로 살았고 후에 몽둥이와 돌에 맞아 죽었다. |
맛디아 | 터키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 그리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X형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
알페오의 아들 다대오 | 페르시아에서 전도를 하다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
바돌로매 | 아르메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살가죽이 벗겨진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
도마 | 인도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창에 찔려 죽었다. |
빌립 | 터키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모진 채찍질을 당한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
시몬 | 영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
요한 | 끓는 기름에 던져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후에 밧모섬에 유배되어 요한계시록을 쓰고 그곳에서 죽었다. |
가롯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예수님을 배신한 사람이라 제자들의 명단에서 뺐다. |
예수님께서 자신을 배신한 가롯유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배신당한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라고 하였다.
이말씀은 가롯유다에게 가해질 지옥의 형벌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배신할 사람이 제자인 가롯 유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음에도 제자인 가롯유다가 자신을 판 것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드러내신 것이다.
사탄이 가롯유다에게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 생각을 사탄이 심어 주었을때 가롯 유다에게는 창피함을 넘어 서운함과 원망이 사탄이 속삭이는 유혹과 미혹에 견디질 못하고 넘어간 것이다.
가롯 유다는 지근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이적들을 눈으로 보고 지켜본 제자로 결국은 향유옥합으로 인하여 사탄이 그를 시험에 들게 하여 예수님을 배신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였다.
세상이 만들어진 천지창조이후 모든 인간들중에 가장 운이 없고 재수가 더럽게 없는 사람을 꼽으라면 가롯 유다이다.
이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보았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도 보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식사도 함께 하였던 인물이였다.
그럼에도 이사람은 고작 은전 30냥에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아 넘겼다가 죄책감으로 스스로 자살까지 하였으니 지옥에서 받을 고통으로는 너무나 큰 죄를 지었던 인물이다.
운도 더럽게 없고 재수도 억세게 없었다고 볼수 있는 인물이다.
반면에 예수님 우편에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는 이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고 재수가 억수로 좋았던 인물이였다.
왼편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강도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능력을 보여봐" 라고 조롱을 할때 우편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강도는 "우리는 죄를 지어 이렇게 벌을 받는 것이지만 그분은 죄가 없다" 라고 말을 하면서 "주여! 하늘에 가실때 저를 기억하소서" 라고 말을 했다.
이강도가 한 말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있음을 아시고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을 이강도는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의 진심을 아시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다.
이강도는 이세상에 그 어떤 인간들보다 운이 좋고 재수가 억수로 좋은 사람이였다.
당시의 십자가형은 흉악한 범죄자들만 받는 형벌이였는데 이강도는 자신이 죽어 지옥에 갈 처지였음에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자신의 좌편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함께 한 행운만으로 인하여 말한마디로 이강도는 구원을 받을수 있었던 것이였다.
이보다 운이 좋고 재수가 억세게 좋은 사람이 지구상 그 어디에 있을까?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알수 있는 인간 군상들.
"배신"
사람이 살아가면서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이 있고 배신을 환경에 따라 하는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나 인간들의 삶에서 많이 볼수가 있다.
사람이 배신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충성도와 관련이 있다.
사람을 섬기다가 자신의 충성도에 비하여 얻는 것이 없거나 보상이 적거나 알아주지 못하는 서운함에서 많이 발생한다.
군주를 섬기다가 배신을 하는 경우도 있고 기업가를 섬기다가 배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에서 상사를 배신하는 경우도 있다.
이모든 배신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사람이거나 섬기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충성도에 비하여 보상이 적거나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여 발생하는 서운함에서 비롯되는데 서운함이 발생하게 되면 반드시 원망이 따르게 되어 결국 자신의 주인이나 모시고 있는 상사를 배신하게 되는 것이다.
원망, 서운함, 집착, 분노, 증오, 애증, 미움, 격노, 등등....,
사람의 마음에서 이런 마음들이 생기는데 이것은 자신의 몸속에 있는 대부분의 귀신들이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생각속에 심어주는 것들이다.
예수님께서 "너의 마음에 사단이 들어갔구나" 하며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는 성경의 구절은 귀신들이 사탄에 속한 자들이기에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다.
사람의 몸속에 기거하고 있는 귀신들은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나 죄를 짓게 할려고 끊임없이 밤낮으로 침소봉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세상에 산다는 것은 늘 귀신들과 영적 싸움을 하며 믿음을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인데 이런 신앙생활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국은 저멀리 있고 죄는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속에 가깝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으로 가르쳐 주고 계신다.
"늘 깨어서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에필로그》
나는 예수님을 섬기기로 마음을 먹고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성경은 딱 한번 통독을 했다.
예레미아 복음서를 읽다보면 머리가 지끈 아파 오는데 복잡한 알아듣기 힘든 구절을 빼먹고 주로 신약을 많이 읽었다.
신앙생활을 하는 길이 솔직히 너무 버겁고 힘이 든다.
예수님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산다는 것은 세마디로 말을 하자면 항상 살아가면서 물질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하며 모든 것을 용서하며 자신을 희생해가며 자신의 탓을 해야 하는 이런 신앙생활이 참으로 힘들때가 많다.
그런데 목회자들은 천국에 가는 것을 너무 쉽게 말을 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의 믿음이 하나님이 보시는 믿음의 기준에 합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늘 마음조리며 살아가고 있는데 마음에서는 늘 두려움이 앞선다.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마음 편하게 살아도 좋으련만 세상에 살아가면서 믿음의 생활이 왜 이렇게 힘이 들고 버거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항상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조심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며 믿음생활을 하고 있지만 믿음생활에 있어서 자유롭지가 못하다.
신앙생활이 나는 이렇게 너무 힘들고 버거울때가 많은데 요즘 목사들은 늘 사는 것이 천국이고 생활도 천국이다고 쉽게 말을 하며 성도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는 목사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천국이 저렇게 쉬운 곳이였나" 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자주 들고 있다.
돈을 쫓는 목사가 어떻게 목사라고 말을 할수가 있을까?
돈을 쫓는 것 자체가 맘몬신을 섬기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인데....,
이세상에는 수많은 목사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사명을 감당하는 목사보다 맘몬신을 섬기는 목사들이 차고 넘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세상이 이럴진대 구원을 얻을 만한 성도가 얼마나 되겠는가?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까운 현실인 것을...........,
이런 돈을 탐하는 사이비 목사들로 인하여 함께 지옥에 떨어지는 성도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누가 나에게 예수를 왜 믿느냐고 물어 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할 것이다.
"지옥에 가기 싫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라고
만약에, 지옥이 없고 천국만 있다면 나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를 믿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옥에 가기 싫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이지 그외에 무슨 이유가 더 있을까?
세상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지옥에 가서 형벌을 받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드신 피조물인 사람인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이신 아들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내어 주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죄로 인하여 지옥에서 형벌을 받으며 고통으로 보낼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어 주셨으니"
"사람에게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일이요.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에서도 재판장의 심판에 따라 감옥에 가거나 면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 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신론자나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이런 사실만은 반드시 잊지 말라!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때 영을 혼에 불어 넣어 만드신 것이 아담이라는 사실을!
오늘날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영혼을 가진 아담의 후손들이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영혼이 있기에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나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끝 맺음말]
나는 지금 현재까지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참으로 많은 뒤통수를 맞고 배신을 당했었다.
나는 사람을 배신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이순신의 인물됨을 배웠기 때문인데 어린 나에게 이순신의 충심을 배우라며 임금이 신하에게 저렇게 고문을 가하며 신하를 괴롭혔음에도 임금에게 의리를 지키며 끝까지 충심을 다한 그분의 인물됨을 배우라고 했다.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인 애국심도 배우라고도 하셨다.
그때 나이가 어려 애국심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어린 나이였기에 아버지의 말씀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배신을 하는 사람의 모습과 임금을 향한 충심은 그런데로 알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배신을 하는 배신자를 무척 싫어한다.
지금까지 나는 사람을 배신한 적은 없다.
솔직히 사람을 배신하는 배신자치고 인물됨이나 인품이 칭찬받을 만한 인물이 오천년 역사를 뒤져 보아도 단 한사람도 나오지 않는다.
배신자라고 불리우는 역사의 인물중에 올바른 인간들이 단 하사람이라도 있었던가?
그래서 나는 배신자를 무척 싫어하는 편이다.
나에게 뒷통수를 친 사람은 용서를 할지언정 믿음을 저버리고 배신을 한사람은 두번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신의를 저버리고 배신을 한 사람은 두번다시 만나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내성격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에 경상도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의리와 신의와 약속을 목숨처럼 여기고 사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
그놈의 의리는 이순신의 인물됨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어릴때부터 배웠다.
기독교인이 되고 나서 내가 만난 인간들은 하나같이 기독교인을 이용하고 믿음을 강조하며 이용하는 인간들이 넘쳐났지 기독교인이라고 대우해 주는 인간 하나 못만나 봤다.
나는 인복이 없어 허구헌날 나를 이용하는 인간들이 얽히고 설키며 늘 이용당하며 늘 그렇게 살아왔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독교를 믿게 되었지만 이날 이후로 나에게는 고난과 시련이 끊이질 않았다.
정확히 말을 하자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삼십년이 다되어 가는 기간동안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사업도 예수님을 믿고 나서 부도가 났고 나의 모든 형편이 그때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말을 할수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예수님을 믿고 나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을 할수가 있다.
내가 아는 지인이 했던 말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을 하고 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십년이 넘도록 다녔는데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안좋은 일만 허구헌날 벌어지더라"
그때 이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나도 예수님을 믿은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나역시 엿 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당시에도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 험난한 길이 시작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그런대로 고만고만한 삶을 유지하고 넘어갔는데 진짜는 19년전에 있었던 일이였다.
이때는 정확히 말을 하자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고 있었고 부처님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온전히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이 먼저 나에게 도움의 손길를 내밀며 나에게 자신을 선택하라고 선택을 요구한 것이였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말씀을 나에게 주신 적은 없으시고 부처님만 나에게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19년전에 하나님과 부처님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을때 선택은 오직 나의 몫이였다.
그때 부처님의 도움의 손길을 거부했을때 나는 내 인생에 있어 앞으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이미 각오도 했었다.
그날 이후로 정말 나의 삶은 궁핍한 환경에 몰리고 고난과 시련도 끊이질 않았었다.
이로 인하여 정말 힘이 들어도 참으며 오직 하나님께 매달리며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순간도 역사를 주관하시며 불꽃같은 눈으로 하늘 어디선가 지켜보고 계시며 살아계심을 나는 느끼고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은 이것이였다.
"끝까지 견디는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왜 부처님의 손길을 거부했는지는 내가 적은 블로그 게시글을 꾸준히 구독을 했었다면 그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힘든 궁핍한 환경에 처해 있어도 참으며 버틸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났을때 워낙에 가진 것도 없었지만 가진 것이 없어서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릴수가 있었던 것 같다.
이세상에 수많은 아들중에 아들이 모친의 사랑보단 부친의 사랑을 기억하는 아들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을 잊을수가 없다.
외롭고 고독할때 가끔씩 아버지가 그립고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공수레 공수거"
이게 나에게 꼭 맞는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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